20대 중후반에 홀로 캐나다에 왔다.
딱히 뜻이 있어서 온건 아니었고 그 당시 난 한국이 싫었다.
그리고 언젠가 꼭 북미에가서 살고 싶었었다.
그냥 단순한 이유였고,
가서 공부도하고 일도 하고 정착하고 싶었었다.
그리고 현재 난 그렇게 살고 있다.
공부도 하고, 일도하고 혼자서 영주권도 당차게 따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그렇게 커보이던 것들이
막상 내가 손에 쥐고 나니, 정말 별 것이 아니었고
그 당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금 선택한 삶이 맞는지에 대한 끊임 없는 물음이 이어졌다.
지금 캐나다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 당시에 알았다면
난 캐나다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향수병이나 음식
이런것들은 현지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초반에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나는 이런 생각은 정말 정말 사치였고
이런 느낌이 들 겨를도 없었다.
고추가루, 고추장을 아예 먹지 않았고,
혹시나 한국 음식의 강한 향 때문에 내가 실수할 일이 있을까봐
몇 달간은 절대 먹지 않았다.
물론 김치도, 한국 라면도
그리고 룸렌트로 살았을 때 나의 식재료 도구들? 시즈닝 도구들은
소금 후추가 전부였다.
나 한식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ㅜㅜ
오히려 그 당시에는 음식으로 힘든것보다
영주권을 취득하려고 하는 과정이 훨씬 힘들었었기 때문에
이런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었다.
그냥 아무런 탈 없이 문제들이 해결되길 바랄 뿐.
그 과정에서 아무런 잡음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어느정도 신분에 안정감이 생기고나서야
한국 음식 그리움이 엄청나게 크게 몰려왔었다.
이때의 뭔가 얻은 수확이라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음식이 맵다고 할 때 어떤 느낌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거ㅋㅋㅋ
지금은 거의 매일 한식을 먹는다.
그때의 생각이 이제는 까마득하다.
나의 경우는 가족들을 항상 볼 수 없는 것이 이민의 가장 큰 후회로 남는 것 같다.
힘든일이나 기쁜일이나 그냥 곁에 있고 싶은데
나도 가족들도 힘든일들은 서로 말을 안하게 되어 버렸다.
여기와서 정말로 힘든 일들이 많았고,
그동안 한국에서 울었던 눈물의 양보다
여기서 1-2년 동안 울었던 눈물의 양이 훨씬 많았다.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의 중요한 것들이 남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어졌다.
그래서 화도 많이 났고.
내 영주권 서류에 장난쳐놓고 그대로 나를 해고한일도 있었다.
(알고보니 여기 해고율이 장난아닌곳.
언제나 365일 공고가 올라오는 곳.
그나마 위안)
캐나다에서 일하면서 직장에서 합의금 받은 사람 있음?
그건 나임ㅋㅋㅋㅋㅋㅋ
물론 영주권 서류에 장난친 직장과 다른 곳임^^*
한인 사장 아니고, 한국 악덕 업주 아니고
모두 캐나다 백인 사람들이었음.
누가 캐나다에는 친절한 사람만 있다고 말함?
남들한테는 한 번도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나한테는 정말 연속으로 일어났었다.
이런 일들이 생길때마다 나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왜냐면 가족들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괜히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모든 일들이 정리가 된 후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라고
말하긴 했다.
근데 이런 마음은 우리 가족도 그랬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것도 한참뒤에 알게 되었고,
이것은 나를 참 오랜시간 괴롭게 만들었다.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팠을지 아니까
근데 내가 몰랐고,,
생각보다 내가 가족에 대한 애착이 커서 이러한 것들은
가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꿈에 엄마가 나온 날은 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꼭 전화해서 목소리를 들음.
나는 이 부분이 제일 힘들고,
다른 부분은 반반으로 한국과 캐나다가 좋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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